치킨과 맥주는 언제부터 한 세트가 되었을까? (생맥주 안주문화, 월드컵 열풍, 한류 확산)

요즘 유튜브에서는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치킨과 맥주를 주문해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영상을 보면서 '치맥은 진짜 맛있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퇴근한 뒤 치킨을 주문해 바삭한 튀김옷을 뜯고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면 그날의 고생이 잠시 잊히곤 했습니다.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치킨 상자 옆에는 자연스럽게 맥주가 놓였습니다. 그렇다면 치킨과 맥주는 대체 언제부터 한 세트처럼 여겨졌을까요. 두 음식이 가까워진 뿌리는 1970년대까지 올라가지만, 지금과 같은 대중문화로 굳어진 시점은 1980~1990년대의 생맥주 안주문화와 2002년 월드컵을 함께 보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치맥의 탄생일을 하루로 정하기 어려운 이유치킨과 맥주가 함께 팔리기 시작한 최초의 가게나..

음식과 식문화

생일미역국은 왜 특별한 날의 국이 됐을까? (삼신상, 산후 식문화, 가족 의례)

생일 아침 식탁에는 케이크보다 먼저 따뜻한 미역국이 놓이는 집이 많습니다. 축하 음식이라기에는 소박하지만, 미역국이 빠지면 왠지 생일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미역국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생일에는 케이크보다 미역국을 더 기다렸고, 부모님과 따로 살게 된 지금도 생일이 되면 본가에 내려가 어머니의 미역국을 꼭 챙겨 먹습니다. 생일미역국은 어느 한 사람이 만든 기념 음식이 아닙니다. 출산 직후 산모가 먹던 첫국밥, 아기와 산모의 안녕을 빌던 삼신상, 해마다 태어난 날을 기억하는 가족 의례가 오랜 시간 이어지며 만들어진 생활문화에 가깝습니다.생일미역국의 출발점은 생일보다 출산이었습니다한국의 전통 출산 풍속에서는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흰밥과 미역..

음식과 식문화

삼계탕은 왜 복날에 먹어야 할까? 여름 보양식의 변화 (복달임 풍습, 계삼탕 명칭, 보양식 정착)

최근 외할머니 생신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찾아뵈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갈 때마다 커다란 갈비와 삼계탕, 꽃게를 넉넉하게 차려주시는데, 이번에는 삼계탕을 메인으로 준비해 가족 한 사람마다 닭 한 마리씩 담아주셨습니다. 음식도 맛있지만 손이 워낙 크셔서 외할머니 댁에 다녀오는 날이면 배가 터질 만큼 먹었던 기억이 남습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고, 뜨거운 국물과 부드러운 닭고기를 먹다가 문득 복날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복날 음식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삼계탕을 떠올리지만, 이 조합이 아주 먼 옛날부터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복달임이라는 오래된 풍습 위에 닭 사육, 인삼 유통, 외식 문화의 변화가 겹치면서 오늘날의 삼계탕이 대표 보양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복날 음식보다 먼저 있었던 복달임 풍습삼복은 초복,..

음식과 식문화

우리가 몰랐던 음식의 유래, 알고 보면 전쟁터에서 시작됐다? (식문화 탄생, 전쟁 식품, 유래)

해병대 통신병으로 복무할 때 훈련을 나가면 먹었던 전투식량이 생각납니다. 포장을 살짝 뜯어 초콜릿과 빵을 먼저 꺼낸 뒤 안에 든 팩을 작동시키면 김이 솟아올랐습니다. 한동안 기다렸다가 따뜻해진 음식을 꺼내 먹었는데, 저는 그 안에 들어 있던 퍽퍽한 빵이 꽤 좋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맛없다고 하던 초콜릿도 이상하게 제 입에는 잘 맞았습니다. 초콜릿은 바로 먹지 않고 아껴 두었다가 행군하면서 몰래 뜯어 먹곤 했습니다. 작은 초콜릿 한 조각이 평소보다 유난히 맛있게 느껴지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전투식량 속 빵과 초콜릿처럼 지금은 일상적인 음식 가운데에는 군대의 보급 문제와 깊이 연결된 것들이 있습니다. 통조림과 인스턴트커피, 군용 초콜릿은 먼 거리로 많은 음식을 보내야 했던 전쟁을 거치며 ..

음식과 식문화

염전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한국 소금밭의 역사 (자염, 천일제염, 공간 변화)

예전에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바다까지 이어지는 꽤 넓은 도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길 양쪽으로는 물이 얕게 고인 염전이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할머니 집 윗집에 살던 동생과 제 동생, 저까지 셋이서 그 염전에 들어가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가끔 아저씨들에게 여기서 놀지 말라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지금 그 염전은 모두 사라졌고, 자리에는 넓은 골프장이 들어섰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소금밭이 이제 기억 속 풍경으로만 남았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염전이라고 부르는 공간은 언제부터 한국 해안에 나타났을까요? 옛사람도 지금처럼 바닷물을 네모난 칸에 가두어 햇볕으로 소금을 만들었을까요? 한국의 소금 생산은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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